2024. 10. 7. 03:17ㆍ오늘의 반성
ENTJ들은 성공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본인들이 지금껏 경험적으로 증명해왔듯, 앞으로의 그 어떠한 것도 결과적으로 옳다는 것을 입증할 준비가 되어있고 확신이 있다.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사실 ENTJ는 행복할거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그 누구보다 본인을 잘 알고, 그 누구보다 냉철한 관점에서 따가운 충고를 끊임없이 해줄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며, 본인조차 돌이켜보면 이걸 어떻게 한걸까 싶은 것들을 차근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숲속에 칩거하며, 세상을 이롭게할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루 하루 고되게 수련해나가는 도인의 삶도 ENTJ에겐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불행하게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ENTJ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차선책으로 협력을 택했다.
ENTJ에게 가장 이상적인 협력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구성원들이 ENTJ 본인에게 절대적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한편, 본인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비판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주어, 혹여나 있을 실패의 가능성을 방지해 줄 수 있는 집단. 모든 소통은 합리적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그렇게 우리 모두의 합의를 통해 이견의 여지가 없는(!) 공동의 목표와 방법을 정했다면, 모든 구성원이 가진 모든 것을 갈아넣어(!)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나가는 것. 과연 그들은 원피스를 찾아나선 루피 일행일까? 아니면 지구 정복을 위해 부하들을 갈아넣는 마왕일까? 어떤 것이든 간에, 만화에나 나올 법한 설정들을 꿈꾸기에 ENTJ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고통 받는다. 그리곤 이러한 고민조차 불필요한 감정/시간 낭비라 치부하며 철저히 배제하고 일부러 빌런으로 욕을 먹으며 살 것인지, 아니면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는 욕망과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한 자기 반성 쏙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고통속에서 살 것인지 선택을 해야한다. 그놈의 목적 달성이 뭐가 그리 중요한건지, 쓸떼없이 피곤하게 살고 있는 인간들이 ENTJ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ENTJ가 꿈꾸는, 구성원 모두가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건 사이비 광신도 집단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정상적인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건강한 세상이라면, 각자 다른 환경과 경험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의 목소리를 내는게 당연하다. 세뇌 당한게 아닌 이상 모두가 꿈꾸는 공동의 목표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욕망과 행복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어떤 ENTJ들은 억울한 마음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내가 틀렸을 수 있음을 언제든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상대방을 "존중"할 줄 사람이라고... 왜 나를 공감능력 없는 빌런으로 몰아가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ENTJ 본인들이 목표 달성이라는 욕망이 있듯, 다른 사람들도 각자만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ENTJ는 존중해주는가? 그것이 본인의 목표 달성과 충돌하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응원해준 적이 있는가? 혹시 매너있게 손절해놓고 그걸 존중이라 포장한건 아닐까? ENTJ 본인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 집단 안에서, 목표와 무관한 자유로운 의견 표출은 철저히 묵살하고 있는 주제에, 나는 비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외치는 건 존중으로 위장한 가식임을 깨닫자. 넌 타인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ENTJ가 잊고 있는 또 한 가지의 사실. ENTJ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함께있는 것 자체가 목표일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 자체가 큰 즐거움인 사람들에게, 생산적이지 못하고 의미 없이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 지극히 오만한 태도가 아닐까? 애당초 특정한 의도를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을 한 ENTJ 본인이 객관적인 시각에선 의도가 불손한 사람으로 보인다.
또한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되거나 이상한 것을 인지해도, 그것을 지적했을 때 상대방이 무안해 할 것을 감안해서 눈치껏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무언가 상황이 애매해지는 그것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거절을 표시하는 나름의 고급 수준의 언어인 거다. 이런 모호함을 ENTJ들은 견디기 어려운게 문제일뿐... 하루라도 빨리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에, 모호하게 말하며 정해진 것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이 납득이 안 되는, 아니 납득은 했더라도 1분 1초가 아까워 죽겠는 ENTJ들은, 비록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고 비록 내가 눈치없는 사람이라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 모두의 "성공"을 위해선 악역을 자처하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ENTJ가 생각한 공동의 이익을 위한 희생은,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수도, 폭력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너는 정의롭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너 역시 너의 욕망을 위해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그리고 눈치 좀 챙기자.
자. 이제 다시 한번 선택의 시간이 왔다.
1) 혼자서 다 할래?
2) 같이하면서, 감정 비용 철저히 배제하고, 빌런으로 살래?
3) 그래도 덜 욕먹으며, 같이 있기 그렇게 썩 나쁘진 않고, 뭔가 일은 잘할 거 같아서 가끔은 같이 있을 만한 사람이라도 될래?
아직 나는 사람이 좋나보다. 3)번을 지속하되, 가식적인 존중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