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1. 13:58ㆍDaily Hozy/이런저런 활동들
졸업 후에도 평소 즐겨하던 학교 커뮤니티 서담에 잼버리 통역자원봉사자 모집글이 떴다. 전국민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던 새만금 잼버리. 언제나 그래왔듯 국가가 사고치면 국민들이 나서서 수습하는 테크트리를 열심히 타고 있었기에,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 내에서도 이걸 무급봉사로 도와주는게 맞냐는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봉사자를 모집하는 주체는 학교법인이 아닌 영리법인인 기숙사 였기 때문이다. 기숙사 역시 국가에서 내려온 준전시 징발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겠지만, 평소 학생들에게 기업논리를 앞세우던 그 기숙사였기에 자신들이 갉아먹은 평판의 업보를 받는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착한 우리 동문들의 상당수는 기숙사 역시 을의 입장에서 피해자라는 의견에 많은 공감을 보여주었다.
커뮤니티 여론이야 어쨌건 hozy는 최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해당 공지글을 보자마자 8월 9일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담당자는 매우 정신이 없어 보였고, 봉사자가 급하게 필요한 듯 했다. 지원 시간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라 했고, 풀타임 지원이 어렵더라도 중간에 인수인계를 해주고 가면 괜찮다고 하셨다. 심지어 지금 당장 오실 수 있냐고 물으시는데, 발가락 골절만 아니었다면 바로 갔을 듯. 오후에 학생들 데리고 홍대 투어 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던데 너무 재밌어 보여 아쉬움이 컸다. 어쨌건 지원자가 정말 없는듯 하여, 다음날인 8월 10일 아침 9시까지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 오랜만에 모교에 도착했다. 가니까 금발 백인 여자애들이 학교내 편의점에 엄청 많이 있었다. 지금 스위스 잼버리 친구들이 묵고 있는 기숙사는 원래 국제학생들이 많이들 쓰는 곳이었지만, 이렇게 특정인종만 이렇게 많이 보이는건 또 생소한 그림이었다.
기숙사 지하 1층은 잼버리 상황실이라 프린트된 종이가 붙어있었고, 서울시/마포구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8분 정도 계셨다. 그리고 중앙부처에서 파견된 분 한 분,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에서 파견된 분 한 분이 계셨다.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면 99%의 업무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하고 있었고, 파견 온 중앙부처 인원들은 딱히 역할을 부여받진 않았다. 이것도 할 말이 많지만 내 알 바는 아니므로 넘어간다.
어제 담당자와 통화할 때는 자원봉사자가 없는 듯 했는데, 막상 가보니 자원봉사를 위해 모인 친구들이 많았다. 요즘 세대가 각박하다 어떻다 말이 많지만, 그건 인터넷에 보이는 일부일 뿐. 현실에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 다른 친구들과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포구 공무원 분께서 공지를 주셨다. 스위스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오전 일정은 전부 취소되었다고 말이다. 점심시간까지 아무런 활동도 없이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상황실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점심시간, 서강대에 배정된 스위스 친구들은 곤자가 플레이스라는 학교 내 뷔페식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한식 뷔페이지만 메뉴가 다양해 스위스 친구들도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같이 테이블에 앉게 된 스위스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음식이 괜찮냐고 물었더니 5명이 갑자기 쌍따봉을 날려 당황했다. 예의가 바른 친구들인듯. 스위스 스카우트 친구들은 5~6명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한명이 리더를 맡는듯 했는데, 리더인 남자 아이는 영어를 잘했지만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독일어만 할 줄 알더라.
식사가 끝나고 오후 행사는 마포구청에서 공연을 보는 것 이었다. 어제 봉사활동을 지원했던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다소 급조된 퀄리티의 공연이 계속되었다고... 그런데 2일차 공연은 마포구청에서 작심하고 준비한 것인지 준수한 퀄리티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역시 홍대를 품은 마포구의 저력인 것인가? 공연도 공연이지만, 이 짧은 시간에 대형 현수막을 준비해서 강당 위에 걸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이것이 K-의전이다!
공연은 해금 연주, 대금 연주, 풍물패, 비보잉 공연이었고, 특히나 해금 연주자 분의 실력이 압권이었다. 서양에 바이올린이 있다면 한국엔 해금이 있는 듯. 풍물패 공연은 처음엔 흥이 넘쳤으나 공연시간이 좀 길어 중간엔 텐션이 많이 떨어졌다. 비보잉은 뭐 우리나라가 원래 잘하기도 하고 유럽권에선 익스트림 스포츠로 각광 받으니 잘 먹혔고. 스위스 친구들도 리액션 잘 해주어 공연은 아주 순조롭게 끝이 났다.
공연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일은 스위스 친구들을 4대의 관광버스에 잘 탈 수 있도록 돕는 것. 공연이 끝나고 나서 아이들에게 버스 타라고 영어로 공지를 한 번 해줬다. 내가 자원봉사와서 한 정말 몇 개 안 되는 output 중 하나였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며, 현재 스카우트 활동을 하고 계시다는 다른 자원봉사자 분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분 피셜, 잼버리에 참석하는 친구들은 선발과정을 거쳐 올라온 한 집안 한다는 자제들이라고... 그 친구들을 뻘밭에 방치해서 그 개고생을 시킨 거라고 한다. 소송 안 걸리면 다행이라고 하셨다. 스위스 친구 중 한 명이 휠체어 타고 다니던데, 얘는 모기를 하도 물려서 못 걷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보어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져서 애들을 강하게 키우려는 스카우트 활동이라지만, 이건 좀...
학교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오후 6시 반이었다. 딱히 오후에 내가 도움 줄 만한 일도 없는 것 같아, 대형 쓰레기봉투를 스위스 친구에게 건네주는 일을 마지막으로 봉사활동을 마쳤다. 별로 봉사활동을 한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공무원분들이 영어 어려움을 겪을 때 바로 도움 드린 역할 정도는 한걸로 만족했다.
마치는 말...
공무원 조직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조직의 결정권자들은 사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최소화 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갈려나가던 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공무원 분들이, 본인 업무는 뒤로 한채 아이들 관리하고, 비 맞으며 차량안내하고, 공연 준비하고, 이런 저런 의전행사들을 뛰었다. 그 와중에 결정권자들이 현장에 안 맞는 지시들이 끊임없이 하달하는 것을 목도했고, 결국 까라면 까야했기에 실무자들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 공무원 분들에 대한 처우는 좋은가? 이제 연금도 안 준다면서. 이 조직에 신규 인력이 지속적으로 수급되지 않고 점차 체제가 붕괴되어 가는 건, 지금껏 개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며 사람을 갈아넣던 우리의 문화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줄곳 우리의 행정서비스가 전 세계 최고라 자랑하곤 해왔다. 그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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