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진학 톺아보기] 1. 어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게 됐지? (Feat. 비전공자 컴플렉스)

2023. 1. 17. 15:12Economist의 IT 커리어/미국 대학원 진학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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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나왔는데 어떻게 IT를 해요?"

 

IT 업계에서 일하게 된 이래로, 친구와 지인을 비롯한 업계 바깥 사람들에게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맥락에서 업계 안에선 어떤 질문을 받았을까? 정답, "질문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내 비전공자 경력이 드러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것 마냥 말을 아꼈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들켰을 때의 느낌이라면 비슷할까? 그래 이 집단에서 난 무언가 빵꾸난 minority가 맞으니까...

 

이번 글에선, IT 업계에서 커리어를 이어오며 언제나 컴플렉스였지만 또 한편으론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준 "비전공자"라는 타이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결국 내가 미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된 근본적 원인에 "비전공자로서의 컴플렉스"가 자리하고 있기에 첫번째 글감으로 삼았다.

글이 좀 장황하고, 딱히 정보랄 건 없는 징징거리는 회고록의 글이므로 대학원 진학정보를 찾아온 사람이라면, 이 글은 그냥 SKIP 해도 무방하다.

 

<미국 대학원 진학 톺아보기>

1. 어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게 됐지? (Feat. 비전공자 컴플렉스)

2. 퇴사자의 미국대학원 준비 타임라인은?

3. 비전공자는 CS 대학원 준비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4. SOP / Resume / Personal Statement / Diversity Essay, 쓸게 많네? ㅎ

5. 추천서도 꽤나 공들일게 많더라.

6. 그래서 준비하는데 $얼마나$ 들었어?

 

 

 

 

<이 글의 목차>

1. hozy는 어쩌다가 비전공 개발자가 되었을까?

2. 그래서 비전공자가 뭐가 그렇게 컴플렉스 였는데?

 

1. hozy는 어쩌다가 비전공자 개발자가 되었을까?

내 학부시절을 4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인서울 4년제 경제학과에 입학.
  • 경제학이 재미있어,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최종학점 4.04 / 4.3 으로 마무리.
  • 학부시절 응당히 경제학으로 밥먹고 살 줄 알았고, 3학년이 끝날 무렵 한국은행 입행 목표로 잡음.
  • 4학년 교내 한국은행 입행시험 준비 스터디에 들어가 1년간 열심히 공부했으나, 결과는 낙방.

 

이제 곧 백수라는 타이틀로 사회에 내던져지게 될 4학년 겨울 방학의 나는, 과연 뭘 해먹고 살아야할까 고민이 많았다.

 

일단 첫번째 옵션, 한국은행 입행시험을 1년 더 준비해보기? 2018년 1년간의 수험생활은 내게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순공부시간 10시간을 매일같이 찍어야 합격한다는데, 나란 놈은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능력이 결여된 인간이었다. 그나마 흥미있는 과목은 밤새가며 공부하긴 했다. 문제는 국제경제학, 게임이론 같은 하기 싫은 과목들을 공부할 때면 집중이 안 되더라.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으면 딴 생각하거나 폰이나 보고 있고, 이럴 바에 호르몬이라도 충전하고 오자고 운동하고 오면 이미 2시간이 지나있다. 밥까지 먹고오면 어느덧 3시간 훌쩍이다. 순공부 8시간? 도대체 이거 어떻게 해? 그나마 내겐 축복이자 선물이었던 최고의 스터디원들과 으쌰으쌰 했기에 수험생활을 버텼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결과는 필기짤이었다. N년을 더 한다 한들, 내가 변할 것 같지도 않았고 가망도 없어보였다. 고로 PASS.

 

두번째 옵션, 상경계열 졸업생이 많이 취업한다는 금융권에 취업하기? 금융권 인사담당자의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을 밸류에이션 해봤다.

  • 인턴 경력 전무.
  • 학회 경험 전무.
  • 수상 경력 전무.
  • 자격증 전무.
  • 학점과 영어성적 좋음.
  • 한은 준비했다고 함. (어쩌란 거지?)

 

좋은 증권사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갖고서 학부 4년 동안 착실히 노력해왔을 경쟁자들의 이력서 옆에, 내 이력서를 놓는것 조차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밥벌이는 해야하는데... 투자운용사라는 자격증이라도 따보자는 생각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낙서 투성이의 협회 공식 교재도 독학해보고, 해커스 강의도 들어봤다. 하지만 세법을 외우며 확실히 느꼈다. 나는 암기에도 재능이 없다는 걸. 이래저래 핑계만 늘어놓으며, 입증한 결과물 하나 없는 주제에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고 징징거리는 한심한 인간상, 내가 바로 아Q였다. 매일 KOFIA 사이트에 들어가 합격할 여지 1도 없는 자산운용사들의 모집공고를 열어볼 때면, 도대체 나는 무슨 안일한 생각으로 학부시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대충 살아온 걸까 절망도 많이 했다.

 

인강 돌려놓고 필기만 하면 뭐하니, 머릿속에 넣을 생각을 해야지...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학교에서 보게된 포스터가 있었다. 국비지원으로 공짜로 할 수 있다는 "빅데이터 과학자 양성과정" 이었다. "빅데이터? 뭔가 금융권에서 핫하던데. 나도 해볼까?" 하는 진짜 단순한 생각으로 지원을 했고 (지원한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내가 참여했던 바로 그 프로그램

 

빅데이터 과학자 양성과정의 커리큘럼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Oracle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으로 대량의 데이터 추출하는 방법을 배운다.

  2) R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통계적 방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다.

  3) Python 확장 패키지를 통해 분석 결과를 시각화 한다.

 

홍보하던 커리큘럼 자체는 지금 봐도 그럴듯 해보인다. 문제는... 1번 Oracle 데이터 베이스 학습에 커리큘럼의 70% 이상이 몰빵되어 있었다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이건 빅데이터라는 키워드로 포장해놓은 Oracle DBA 양성 과정이었다. 당시 클라우드 기술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며 DBA 커리어는 끝장났다는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양산형 OCP 자격증 장사로 쏠쏠하던 Oracle이 마지막으로 뽑아먹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내막이야 어쨌건,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열정은 진심이었다고 회상한다. 뭐 어쨌거나, 스스로를 아Q라 객관화 하던 당시의 나는 꽤나 독기를 품고 있었고, SQL이라는 언어가 나름 재미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다. 커리큘럼 끝무렵 겉핥기로 배운 R이라는 언어로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었다. (Python은 자료형 배우고 끝난게 함정) 이 때 처음 생각했다. "IT 너, 나랑 괜찮을지도?"

 

학부 마지막 겨울방학, 학교 기숙사에 지내며 주중 9 to 6는 숙대에서 데이터베이스 수업을 듣고 오고, 자기 전까지 도서관에서 Oracle DB 운영 기술들을 복습하며 보냈다. 주말 이틀은 학교 주변 스크린 골프장에서 21시간 알바를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척 연기하고 있었지만, 내면에선 이렇게라도 나를 몰아 붙이지 않으면, 내 자존감이 나락으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았기에 괜히 내 몸을 더 괴롭혔던거 같다. 언젠가 휴일만큼은 쉬고있을 미래의 hozy는, 연중무휴 열심히 돌아갔던 과거의 hozy를 회상하며 행복할 수 있을거란 망상을 하면서... 그렇게 나름 쓸떼없이 뜨겁게 학부 마지막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날이 슬슬 따뜻해질 무렵 어느덧 빅데이터 프로그램도 마무리됐고, Oracle 인증 DBMS 자격증도 땄고, 가족, 친구, 교수님의 축하를 받으며 졸업도 한 백수가 되었다. 아직 경제학 커리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였을까? 국가에서 진행하는 국제기구 취업 프로젝트에 지원해서 IMF Research Assistant 포지션 면접도 봤다. 나름 간절해보이는 내 진심을 봤는지 면접관 중 한명은 내게 열심히 해보란 조언을 주었고, 나는 워싱턴 DC에서 일할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그해 봄, 한국은행 준비하며 공부했던 경제학을 나름 착실히 복습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몇달이 지나도록 IMF에선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이 명함을 받을 때만 해도 워싱턴 DC 갈 줄 알았지...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순 없었기에 학교 취업지원팀 사이트에 들어가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방법도 알아봤다. 그때 우연히 본 게 하나금융TI와 LG CNS라는 2개 기업의 비전공자 부트캠프 모집 공고였다. 아직 IMF 취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빅데이터 국비과정 중 IT가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냥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두 곳 모두 인적성을 먼저 봤고, 적성검사는 끽해야 수능 수학적 귀납법 수준의 문제들이었기에 쉽게 풀렸다. 그리고 하나금융TI에 먼저 합격을 했다. 여기는 한국 폴리텍 대학에 교육을 위탁하고, 최종적으로 과정을 잘 이수한 인원을 뽑아가는 구조였다. 서현역 폴리텍 대학교 캠퍼스로 통학하며 Linux, DB, Java 프로그래밍 등을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일부 교수들의 구시대적 발상과 폭력적 언사에 매우 불쾌했다. 그래도 좋은 동기들이 있었기에 으쌰으쌰하며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LG CNS 부트캠프도 합격하게 되어 마곡 LG 사이언스 파크로 프로그램을 옮기게 되었고, 보다 수강생을 존중해주는 젠틀한 분위기에서 Java 프로그래밍을 중점적으로 교육 받았다. 처음 제대로 접해본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어려웠지만 재미있었고, 열심히 공부했다. 결과적으로 부트캠프 종료 후, 코딩 테스트와 최종 면접을 거쳐 LG CNS 정규직이 되었다. 이후 그룹 연수도 다녀오고, 전공자 출신 CNS 합격생들과 교육프로그램도 이수하고, ERP 라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부서에 발령을 받아 LG전자의 ERP 시스템을 지원하는 개발자로 근무하게 된다.

 

 

 

 

 

2. 그래서 비전공자가 뭐가 그렇게 컴플렉스 였는데?

혹자는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고시 낭인 될뻔한 사람이 운 좋게 대기업 다니게 됐으면 좋은거 아냐? 요즘 개발자 핫하다면서. 잘 됐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연히 전공 지식을 배운 사람이 일해야할 분야에서 비전공자 출신이 일하며 느끼는 한계가 너무 많았다. 무언가 내 커리어에 의문점이 생길 때 그 대답에 "비전공자니까"를 붙이면 대부분 말이 되었다.

  1. 야 이거 이렇게 프로그램 막 짜면 안 돼. 너 왜 이렇게 했어? 비전공자니까.
  2. CNS에도 요즘 핫한 AI / 머신러닝을 다루는 부서 있다던데 거기는 왜 못 가? 비전공자니까.
  3. 왜 다른 친구들은 여러 개발부서에 전배도 가고 하는데 넌 못해? 비전공자니까.
  4. 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설명 못해? 비전공자니까.
  5. 야 네카라쿠배 좋다던데 너는 왜 못 가? 비전공자니까.
  6. (블라인드 발) ㅋㅋㅋ SI 왜 감? 비전공자니까.

 

확실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여기서 내가 비전공자라고 퉁쳐서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다음 두 가지 개념이 섞여 있다.

 

(1) Bachelor of Science in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이라는 학위가 없다.

(2) 위의 학위 과정에서 당연히 배웠어야할 지식들의 상당수를 모른다.

 

내가 IT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며 가장 많이 고통 받던 것은 (2)에 대한 결핍이었다. 아직 (1)에 대한 결핍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나는 (2)가 부족했다. 첫 부서 발령 후 약 1년간은 아래와 같은 애티튜드로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내가 해야할 질문이 뭔지 조차 모르는 상황 그 자체...

  • 내가 이 작업을 해야하는 이유가 뭘까? 몰루.
  •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된걸까? 몰루.
  • 뭘 보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몰루.

 

사수는 나를 대놓고 싫어했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했기에 어르고 달래가며 하나하나 질문하고 공부하며 시스템을 이해했다. 그렇게 조금씩 ERP 시스템이 무엇인지 감을 잡아갔고 시간이 지나다보니 익숙해진 건지 1인분은 할 수 있게 되더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분명 나는 CS지식을 공부하지 않았는데, 일이 익어가고 숙련도가 올라간다는 것.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CS 지식을 요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프로그래밍 지식은 PL/SQL이라는 언어로 오라클 DBMS에서 대충 어떻게든 돌아가게 하는 기술만 있으면 되었고, 업무에 필요한 핵심 지식은 LG전자의 원가 계산 프로세스 였다. 사실 원가 계산 프로세스는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LG전자 회계팀 사람들이 숙지해야하는 것이고, LG CNS 인원들은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기술적 지원을 해주는게 당연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메인 지식 숙지를 LG CNS 인원에게 아웃소싱 준 LG전자 직원들은, 마치 나를 [나무위키 LG전자 원가회계 항목 + IT 자문역]인 것 마냥 부렸다. 때문에 내 직업 숙련도가 올라가면 나는 숙련 ERP 소프트웨어 오퍼레이터가 되는 것이었지, 숙련된 개발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명색이 프로그래머라던 hozy는 이런 질문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자료구조 아세요?"

 

 

물론 업무를 하며 Computer Science 지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지적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너무나도 친절하셨던 총괄님들은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내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 해주시곤 했다. 하지만 매번 자기객관화로 그 누구보다 찰지게 스스로를 패는 나는 항상 self-consciousness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동료들과 고객들에게 내 개발 결과물을 공개할 때마다, 자신있는 척 했지만 실상은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 조차 모르는 헛깨비가 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 이때부터였을까 남들이 77ㅓ억 하며 놀리던 그 밈에 동승하지 못하고, 놀림 받던 그 선수들의 처지에 공감하기 시작했던게...

 

 

 

자문 : 문제의 근본을 찾았으니 해결하면 그만 아닌가요? 전공지식이 부족하면 공부를 하세요. 왜 징징거리나요?

자답 : 나도 해보려 했는데 상황이 안 되더라구요...

자문 : IT회사들 전부 개발자의 성장에 목 메던데요? 그리고 CNS도 인재 직접 키워 쓴다고 홍보하던데, 그냥 님이 공부 안한거 아닌가요?

자답 : 아... 그게...

 

 

그래, [자료구조 / 알고리즘 / 프로그래밍 언어 / 아키텍처 / 운영체제 / 네트워크] 모르면 공부하면 되지. 요즘 IT 기업들은 자사 인재들의 능력 함양에 큰 투자를 하는게 트렌드고, 내가 다니던 LG CNS도 본사 방침을 보면 그런 부분을 매우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SI 기업은 태생적으로 남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기에 자체 서비스를 가진 IT 회사와 같은 정책을 펴기 어렵다. 고객에게 끌려다니는 을의 입장에서 아무리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했다한들, 하청업체 임직원의 실력 향상 보단 싼 값에 어떻게든 돌아가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그만인 고객님을 어떻게 설득해서 돈 더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없는 돈 쥐어짜내서 CNS는 나름 교육 플랫폼도 빠방하게 구축해주었고, 자료는 우리가 다 준비해줄테니 너네는 공부만 하면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겪던 현장은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원청의 요청으로...) 매월 초 최소 3일이상 12시간씩 shift 근무해서 낮밤이 바뀐다거나, (원청이 시스템에 투자하길 꺼려해서) 노후화되고 관리 체계가 무너진 시스템에서 산발적으로 날아오는 각종 선감지들을 밤이나 새벽에도 계속해서 처리한다거나 하다보면 졸리고 피곤한 상태로 각자가 알아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공부를 해야했다. 또한 내가 일하던 ERP의 경우 당장 업무를 수행하려면 (원청사람들이 이해하길 포기한) 도메인 지식을 알아야 했으므로, LG전자 원가가 어떻게 계산되는지 학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면 CS 이론 공부는 항상 뒷전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기술력이 있는 개발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나름의 목표와 의지는 확고했기에, Stanford 대학교 CS 커리큘럼을 검색하며 교재도 준비하고, 학습계획도 짜봤다. 학습시간 확보를 위해 LG전자 가산 사이트 지원시절엔 바로 옆 가리봉동에 자취방도 구했었다. 그렇게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생애 첫 자취러의 일상엔 낭만이 있다.

 

하지만 근무지가 상암->가산->여의도->상암으로 계속해서 바뀌어서 내가 계획한 공부 스케줄이 어그러지는 것을 지속적으로 겪다보면, 빡공하겠다던 나의 의지도 점차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 쓰고 보니 LG CNS가 너무 악덕 기업처럼 묘사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난 LG CNS에 감사하며 그 이유는 많다.

 

1. CS 배경이 1도 없는 나를 개발자로 근무하게 해주고, 내 적성을 찾도록 해주었다.

2. 많은 좋은 분들과 일하고 교류할 경험을 주었고, 그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3. 고시낭인이 되어 바닥을 기던 내 자존감을 "대기업 다닌다"는 타이틀로 boost-up 시켜 주었다.

4. 직원몰에서 구매한 LG제품으로 본가 가전을 하나씩 바꿔 나갈 때 엄빠가 너무 좋아하시더라.

5. 내 미국 여정을 함께할 동지인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업계는 다르다. 캐삭빵 CC 아님)

6. 코로나로 전세계가 패닉에 빠졌을 때, 따박따박 월급주며 내 재정을 풍족하게 해줬다. (그 돈으로 유학간다.)

 

 

정말 끝내주던 LG CNS 상암 DDMC의 북한산 ~ 여의도 뷰

 

 

어쨌거나, LG CNS를 다니며 주어진 프로젝트를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필이면 입사가 7월인 관계로 나에겐 3년차 개발자라는 타이틀이 달렸지만 현실은 컴퓨터 사이언스의 기본도 모르는 후루꾸였다. 이대로 커리어를 이어간다면 나는 개발자가 아닌 LG전자 원가로직을 전승받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회사가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내치고자 한다면 갈 곳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 같아 불안했다. 분명 같은 프로그래밍이라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왜 나는 이런 프로그래밍 밖에 할 수 없는 것인지 불만이 생겼다. 왜 나는 시장에서 대우받을 수 없고, 왜 나는 신기술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저 능력좋은 애들이 하는 남 얘기로만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불편한 감정을 계속해서 느껴야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래, 답은 항상 같지. 넌 BFS도 모르는 coding monkey잖아~

 

 

이때부터 진지하게 커리어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가장 우선적으로 과연 이 업계가 나와 맞는가라는 질문엔, 자신있게 YES라 답할 수 있었다. 매우 힘든 회사생활이었지만, 개발 업무가 마치 레고를 갖고 노는 것처럼 즐거웠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IT 업계는 유지하는걸로 한다면 어디를 가야하는가? 내 첫번째 답은, 자체 서비스로 먹고사는 IT 기업, 소위 "네카라쿠배에 가자"였다. 그런 회사로 간다면 대우도 좋고, 내 기술적 성장과 기업의 성장이 같은 방향에 있으니 내 자기계발에 회사가 호의적일 거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취업하지? 난 전공지식이 부족한데... 그래서 맨처음 했던 생각은 경제학을 배웠던 것처럼 대학교에 가서 제대로 배워보자는 거였다. 내 상황에서 한국 교육기관에서 CS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니 다음 세 가지 정도 있었다.

 

(1) 수능을 다시봐서 학부생활을 다시한다.

(2) 학사편입이라는 것을 한다.

(3) 석사를 지원한다.

 

(1)은 너무 쓸떼없이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언수외, 아니 국영수+과학탐구(ㅋㅋㅋ)를 다시 공부하는건 정말 자원 낭비라 0.1초 고민하고 접었다. (2)는 서울대 등 극히 일부 기관이 극히 소수의 인원을 뽑긴 했지만, 문턱도 높아보이고 가능성도 희박해서 내 인생을 걸기엔 너무 위험해 보였다. (3)은 대개 전공자를 위한 자리였고, (2)와 마찬가지로 비전공자에게 열린 기회역시 바늘구멍처럼 보였다. 이미 문과 쪽은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 적은 TO를 갖겠다고 경쟁하는 상황 아닌가?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건 모르는 전공을 배우려고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을 하는데, 전공지식 시험으로 사람을 뽑더라. 이미 준비된 사람 뽑을 거면 도대체 석사는 왜 있는 걸까? 

 

 

국내 고등 교육기관들이 그닥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hozy는 self-study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웹상에는 교육과정도 많고, 자료도 널려있다.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알기 때문에, 굳이 돈들일 필요없이 수험생활 했듯 혼자 공부하면 이쪽 분야도 학부수준 지식은 충분히 함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을 부모님께 설명드렸다. 좀 놀라신 듯 했지만 내 의견을 존중해주시더라. 근데 거기서 엄마가 유학 얘기를 처음 꺼내셨다. 정말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방향이었다. 그때부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네카라쿠배에 가면 행복할까? 거기있는 사람들은 거기를 최종 정착지라고 생각할까? 네카라쿠배 다니면 실리콘밸리 가고 싶지 않을까? 어차피 거기 가서 또 누군가를 부러워 할거면, 아예 걍 바로 실리콘 밸리 가보는건 어떻지?

 

와... 이게 될라나 싶은 그때 나는 글로벌 공대인 유투브를 보고 말았다...

 

 

 

 

 

미국 석사 지원이 불가능한건 아니구나... 학점이 안 좋아도 가는구나... 

 

그렇게 미국 석사 리서치를 시작했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석사를 지원해보기로...

지난 2년 9개월간 모아온 돈을 바닥까지 긁어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그렇게 2022년 3월, 나는 퇴사했다.

 

 

To be continued...

 

<목차>

1. 어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게 됐지? (Feat. 비전공자 컴플렉스)

2. 퇴사자의 미국대학원 준비 타임라인은?

3. 비전공자는 CS 대학원 준비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4. SOP / Resume / Personal Statement / Diversity Essay, 쓸게 많네? ㅎ

5. 추천서도 꽤나 공들일게 많더라.

6. 그래서 준비하는데 $얼마나$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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